만화의 미디어믹스에서 나타난 만화 원작 침해 사례 

 

 

법무법인 감우 변호사 이 영 욱

 

1. 서론
최근 만화, 특히 웹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비슷한 내용과 구조를 가지는 다른 분야, 예컨대 영화, 드라마 등에서의 만화에 대한 권리 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사건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간 우리 판례에서 문제되었던 사례들을 살펴보고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지 살펴본다.

 

2. 실제 문제되었던 사례에 관하여 

 

(1)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 vs <두근두근 체인지>사건 (서울고등법원 2005. 7. 27.자 2005라194 결정)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라는 만화의 작가 A는 한 방송국에서 위 만화 발표 이후 유사한 내용의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를 방송하자, 드라마 작가, 드라마 프로듀서, 방송사(B, C, D)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영상저작물처분 및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위 사건에서는 방송사 등이 만화 작가의 만화에 의거하여 드라마를 만든 사실과 소재와 사건전개 방식에서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은 인정되었으나 그러한 내용의 많은 부분은 못생긴 여자가 아름다운 외모로 변신하는 것을 소재로 한 데 따른 추상적인 유형과 관계이거나, 전형적인 구성 혹은 통상적인 사건의 전개 과정이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만화와 드라마는 등장인물과 관계설정, 구성과 주제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어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여 저작권 침해가 부정되었다.

 

(2) <바람의 나라> vs <태왕사신기>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7. 13. 선고 2006나16757 판결) 

 

만화가 A는 <바람의 나라>라는 만화를 잡지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는데, 해당 만화는 연재 당시부터 인기가 많았고, 이후 소설로 발간되고,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다. 한편 유명 방송작가인 B는 <태왕사신기>라는 제목의 드라마 시놉시스를 집필했다. 제작사가 드라마 제작 이전에 드라마 제작사실을 언론에 발표하는 등 사전 홍보를 시작하자 A작가는 B작가가 만화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분쟁에서도 “바람의 나라” 만화가 저명성과 광범위한 배포성을 가지고 있어 B가 이 만화를 보거나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 즉 의거관계는 인정되었으나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양자 사이에 유사점은 있지만─ 대부분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요소이고 (고구려라는 역사적 배경, 사신, 부도, 신시라는 신화적 소재, 영토 확장이나 국가적 이상의 추구라는 주제 등), 창작적 표현에 있어서는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가 부정되었다.

 

(3) <웍더글덕더글> vs 뮤지컬 <점프>사건(서울고등법원 2008나60829 사건) 

 

만화가 A는 3권으로 된 <웍더글덕더글>이라는 만화를 출간하였다. 해당 만화는 모든 가족이 하나씩 다른 무술을 하는 ‘무술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었다. 그 후 제작사 B는 <점프>라는 공연을 하여 내국인 및 외국인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해당 공연 역시 모든 가족이 하나씩 다른 무술을 하는 무술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었다. 양자는 일부 유사한 에피소드 부분도 있었다.
해당 사건은 1심에서 양자가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를 부정하였지만, 2심에서는 거꾸로 만화가가 어느 정도 돈을 받고 조정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4) <설희> vs <별에서 온 그대>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합534119 사건) 

 

만화가 A는 <설희>라는 만화를 잡지와 인터넷에 연재하였는데, 해당 만화는 조선 광해군 시대에 나타난 괴비행물체에 타고 있던 외계인의 수술에 의해 현대까지 600년간 살아온 불로불사의 여자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위 괴비행물체의 출현은 역사서에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그 후 작가 B와 제작사 C는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를 제작, 방송하였는데, 해당 드라마는 역시 광해군 시대에 나타난 괴비행체에서 지구에 정착한 불로불사의 외계인 남자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해당 사건은 만화가 A가 소장을 제출한 후 제3자의 중재에 의해서 A가 소를 취하함으로써 원만히 해결되었다.


(5) 그 밖에 최근에 문제되었던 것으로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와 <킬미 힐미> 사건이 있다. 해당 사건에서는 최근 방영된 드라마 <킬미 힐미>가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만화 <지킬박사는 하이드씨>를 침해하였는지 문제되었다. 양자 모두 다중인격을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즉, 같은 인물이지만 각기 다른 복수의 인격)의 여자 주인공과의 연애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해당 사건은 만화가측의 문제제기로 제작사와 인터넷상 발표가 오가는 설전이 벌어졌으나, 법원의 소송까지는 비화하지 않았다.

 

3. 침해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 

 

(1) 저작권 침해 여부
저작권 침해 여부는 ‘의거성’(access)과 ‘실질적 유사성’(substantial similarity)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학설과 판례의 입장이다. 여기서 ‘의거성’이란 침해자로 의심되는 자가 원작에 접할 기회가 있었느냐 여부의 문제이다. 그런데 실제로 침해자가 해당 작품을 보거나 접하였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보통의 경우 원작이 어느 정도 알려진 작품이라면 침해를 추정한다.
실질적 유사성이란 양 작품이 실질적으로 비슷한지의 문제이다. 스토리가 있는 저작물의 경우 보통 실질적 유사성 여부를 살핌에 있어서는 ① 전체적인 주요 내용의 유사성, ② 등장인물, ③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 ④ 세부적인 줄거리나 사건 전개 과정의 유사성 등을 고려하는 듯하다. 

 

(2) 아이디어의 보호 여부
저작권법에서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에 따라 아이디어가 보호받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아이디어도 어떤 식으로건 보호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디어를 무차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참신성(novelty) 및 구체성(concreteness)을 갖춘 아이디어의 경우라면 어떤 식으로건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찍이 미국에서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는 것이다.

 

4. 실무상 침해 여부 판단에 있어서의 팁 

 

(1) 창작품에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만화가는 정성들여 자신의 만화를 완성하기 때문에, 남의 작품에서 나의 작품의 냄새 또는 흔적을 찾는 것이 매우 쉽다. 그래서 남의 작품이 내 작품을 보고 만들었다는 단서를 쉽게 찾아내곤 한다. 

 

그러나 판례상 저작권 침해가 부정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작물에서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즉 일반인들이 저작권법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 오해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홍길동전>을 주제로 만화를 만든다면,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홍길동전>에 부가한 다른 창작성 있는 부분이지, <홍길동전> 자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홍길동전>은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공중의 영역(public domain)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 설화, 전설, 저작권 보호기간이 소멸한 작품,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법, 표현 등이 있다. 예를 들어서 만화의 경우라면 말풍선, 놀랐을 때 뒤로 발랑 넘어지는 표현 등이 있겠다. 이러한 것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것을 작품에서 썼고 다른 사람이 내 작품의 그것과 비슷하게 썼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유의 영역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아래에서 보는 ‘아이디어’이다. 

 

(2) 아이디어보다는 표현 부분의 유사성을 찾아야한다
저작권법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으로서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idea-expression dichotomy)이 있는데, 이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것은 표현뿐이고, 아이디어는 보호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하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저작권법의 기본 원칙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릴 때부터 친한 두 아이가 있었는데, 둘은 서로 의지하면서 친하게 지내다가 결국 성인이 되어서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는 저작권법에서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A와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B가 어릴 때부터 야한 잡지를 같이 보기도 하고, 이소룡의 브로마이드를 보며 흉내 냈고,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를까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는데, 결국 둘은 모두 조직폭력배에 들어가서, A가 B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하게 되고, B는 상대방 조직원의 칼에 맞아 죽으면서 “고마해라… 많이 무따 아이가.”라는 대사를 말하는 것은 저작권법에서 보호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만든 작품도 직·간접적으로 선대 또는 이전에 창작된 여러 작품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인류 누구나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아이디어는 법으로 보호해줄 수 없고, 저작권법은 아이디어 또는 사상을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만 법적 보호를 해준다는 것이다. 

 

(3) 최근에는 아이디어도 보호가 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디어-표현 이분법’과 조금 상반될 수 있으나, 최근에는 ‘아이디어’도 어떤 식으로건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 대법원에서도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 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라는 식으로 판결을 하고 있다(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것이 무차별적인 아이디어의 보호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 등 뭔가 특별한 경우에는 아이디어도 보호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만화가 선생님측을 대리했던 사건이기도 하지만, ‘광해군 시대에 나타난 괴비행물체에 탔던 외계인의 수술에 의해 현대까지 600년간 살아온 불로불사의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 이야기로서,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은 매우 닮은 얼굴을 갖고 있다’는 ‘아이디어’는 뭔가 보호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4) 저작권의 보호 범위는 대단히 불확실하다
등록으로 명확히 권리범위가 특정되는 특허, 상표와는 달리, 저작권의 경우 창작하는 순간 권리가 발생되고, 게다가 하나의 저작물에는 기존의 선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대단히 넓은 범위의 내용이 포함되므로, 하나의 저작물의 보호범위는 대단히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호한 보호범위를 잘 정리하여 주장하고 입증해야 하는 당사자 또는 변호사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5) 실제 재판에서의 침해 판단은 ‘결론부터 내리고 이유를 찾는’ 듯한 느낌도 있다

조금 역설적인 이야기이지만, 이토록 저작물의 보호 범위가 애매하고 판단 기준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논자에 따라서는 재판관이 나름대로 침해 판단을 먼저 내리고, 거꾸로 침해 판단의 법적 논리를 구성한다고 보기도 한다. 결국 침해품으로부터 원작을 보호할만한지를 미리 판단한 다음(이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가치 평가가 들어갈 것이다), ‘아이디어’라고 해서 침해를 부정한다거나, ‘표현’이므로 침해를 인정하는 식으로 판결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재판을 해보면 이것이 과연 표현인지, 아이디어인지 여부부터 굉장히 애매한 경우가 많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다.

 

5. 결론
만화의 대중성과 영향력이 커지면서 바야흐로 만화로 시작되는 원소스-멀티유스의 시대가 되어 덩달아 침해 사례도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작자가 자신의 권리를 철저히 지키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고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섣불리 다른 사람이 내 작품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단정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SNS, 인터넷 등)하는 것도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명예훼손 등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문제들은 창작자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가급적 변호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