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보험금 10.] 저수지에 빠진 차량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된 피보험자가 탈출을 시도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사고의 우연성을 인정한 사례

(전주지방법원 2021. 10. 21. 선고 2020나7036, 2020나7043 판결)



김계환 변호사(법무법인 감우)




[ 사건개요 ]

소외 망 E(이하 ‘망인)는 2015. 5. 29. 원고와 사이에 피보험자를 망인,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피보험자의 법정상속인으로 하여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함.

 

망인은 2018. 10. 18. 06:38경 정읍시 고부면 관청리 1번지에 있는 저수지에 빠진 차량 안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망인은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정자세로 앉아 있었으며, 사고 차량의 운전석, 조수석 창문은 모두 열려있었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망인에 대한 부검 결과 망인의 사인은 익사로 판단되었고, 특기할 만한 약독물, 알코올 성분이 검출되어나, 내부 실질 장기의 손상이나 병변이 관찰되지는 않았으나, 심장 관상동맥의 좌전하행지에서 고도의 동맥경화 소견이, 우행지에서 경도의 동맥경화 소견이 나옴.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인 피고들은 망인의 법정상속인들로 원고에게 상해사망보험금 청구를 하였으나, 원고는 망인이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본소)함. 이에 피고들이 반소.




[ 법원의 판단 ]

이 사건 사고 이전의 망인의 행적, 사고 장소의 구조적 특성, 망인의 부검 결과, 사망 방식의 특이성 및 탈출의 용이성, 사고 발견시 망인의 상태, 사망 당시 망인의 경제적 상황을 종합하면, 이 사건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였다고 봄이 상당하고, 위 인정사실 및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는,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망인의 사망 원인이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1) … 중략 …

 

2) 그렇다면 보험설계사인 망인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 2018. 10. 17. 19:23경 ‘0주유소’에서 사고 현장 방면으로 출발한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고, 원고 주장처럼 망인이 자살하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저수지에 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3) 저수지 제방길의 폭은 약 2.6m로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또한 이 사건 사망 추정시각인 2018. 10. 17. 19:23경부터 다음날 06:38경 사이는 일몰 이후이거나 일출 이전으로 어두웠을 것으로 보이는데, 위 제방길에는 조명시설이나 추락을 막기 위한 어떠한 안전장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망인이 좁고 어두운 제방길에서 운전하다가 전방주시 태만, 순간적인 판단 오류, 신체적인 이상, 졸음 운전 등의 과실 또는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하여 저수지에 추락하였고, 사고 차량 안에서 익사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출처 : 네이버지도(위성지도)

 

4) 사고 차량은 자동차 열쇠를 꽂은 상태에서 좌우로 돌리는 방법으로 시동을 켜고 끄는데, 사고 차량 발견 당시 열쇠는 ‘시동 꺼짐’ 위치에 있었다. … 중략 … 그리고 설령 망인의 조작행위로 시동을 끈 것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사고 차량이 이미 저수지에 빠진 상태에서 차량 주행으로는 다시 제방길로 올라오기 어렵고, 이 사건 사고 지점의 주변에는 논과 저수지만 있을 뿐 민가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 구태여 시동을 끄지 않더라도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어서 시동을 끄는 행위가 자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곤란하다. 

 

5) 한편 창문을 열고 사고 차량은 운행한 망인의 행위가 이례적이거나, 저수지 물을 차 안으로 빨리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 중략 …

 

6) … 중략 … 망인이 이토록 경험칙상 상정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형태의 자살을 감행하였다고 보려면, 그 고통을 감내할 정도로 자살할 이유가 분명하게 존재할 때 그것이 추정 가능하다고 봄이 상당할 것이다. 또한 망인이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망인에게 사고를 피할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7) 이 사건에서 망인이 자살을 시도하였음을 추단할 만한 유서와 같은 객관적인 물증은 전혀 없다. 평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자살할 만한 동기를 추론할 만한 언급을 한 바도 없다.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망인은 2018. 10. 17. 15:30경 피고 B와 일상적인 대화 후 밝은 목소리로 ‘땡큐’라고 말하며 통화를 마친 바 있고, 같은 날 19:00경에는 ‘0주유소’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친구 K와 대화하다가, 고객을 만나야 한다며 주유소를 떠났을 뿐이다. 이러한 사망 직전 행적은 원만하고 활발하여 대인관계가 좋았다는 망인의 평소 모습 그대로이다. 물론 자살을 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는 오직 그 사람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을 수 있으므로 자살 동기를 외부에서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자살이 아니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 위와 같은 망인의 사망 직전 행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사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자살을 감행한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8) 원고는 망인의 열악한 재무상황이 자살의 이유였다고 주장한다. … 중략 … 비록 망인이 이 사건 사고 발생 전에 약 4,700만 원 정도의 대출금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위와 같은 망인의 소득활동, 가족관계, 당시의 경제적 상황 등에 비추어 그것이 망인에게 자살을 결심하게 할 정도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이었는지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

 

9) 망인은 이 사건 사고 당시 20건의 보험계약을 유지하면서 보장성 보험료로 매월 984,084원을 납입하고 있었으므로 체결한 보험계약의 수나 납입한 보험료가 적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위 각 보험계약은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여러 해에 걸쳐 체결되었고, 이 사건 사고 발생 직전 보험료 부담이 특별히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망인은 1998년부터 오랜 기간 보험설계사로 종사하여 온 자로서 실적이나 수당을 위해 위 각 보험계약을 체결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망인과 망인의 배우자인 피고 B는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월 납입 보험료가 망인의 경제적 능력을 넘어서는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보면 망인이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10) G의 감정서에 의하더라도, 망인의 심장 관상동맥에서 고도의 동맥경화소견이 있음이 사고의 원인으로 고려될 수 있고, 심장 관상동맥은 좁아지거나 막히는 경우 협심증, 심근경색, 심부전, 부정맥, 때로는 돌연사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사고 당시 이러한 망인의 부정맥, 협심증 등으로 망인이 적절한 조향 및 제동을 하지 못하여 우측 저수지로 진행하였거나, 추락 이후 탈출을 위한 적절한 행동을 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설 명 ]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자살로 볼 수 있으려면,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이 증명되어야 한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6857 판결 등 참조).

 

대상사건(전주지방법원 2020나7036, 2020나7043 판결)의 경우 망인이 입수 당시 생존해 있었는데, 사고 차량의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탈출이 가능했을 것임에도 탈출을 하지 않은 점, 사고 장소가 연고가 없는 저수지 부근이고, 사고 장소가 직선 구간인 점, 사고 차량의 시동이 꺼져 있었던 점 등은 망인이 자살을 한 것이라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고의 우연성이 인정되는 이유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은 망인이 자살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 하나하나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인 판단이유를 설시하였다.(매우 인상적인 판결이다).

 

대상판결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이 증명되지 못했다고 본 주된 이유는 유서 등 망인이 자살하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반면, 망인에게 자살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없고, 사건 당시 망인의 행적과 태도 등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망인의 사망원인은 ‘익사’로 밝혀졌는데, 수면제 복용이나 고층에서의 추락과 같이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사망으로 이어지는 수단도 아닌 ‘익사’의 경우 망인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극단적인 고통을 감내했어야 하는데, 망인에게는 그럴 정도의 자살 동기나 이유를 찾기는 어려운 반면, 망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탈출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탈출을 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이다.

 

망인이 탈출이 가능함에도 탈출을 시도한 증거가 없이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맨 채로 사망하였다는 점도, 망인의 당시 건강상태(즉, 심장 관상동맥에서 동맥경화소견이 있었다는 것)를 감안하면 저수지로 추락한 후 탈출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차 열쇠가 시동꺼짐으로 되어 있었던 것도, 사고 장소인 저수지의 특징을 보면 오히려 설명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사고 장소인 저수지는 수심이 깊지 않고(실제로 차량이 완전히 잠기지도 않았다) 차량이 침수되는 상황에서는 시동을 걸면 안 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망인이 침수 상황에서 시동을 끄고 탈출하려다, 건강상의 문제로 탈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로 저수지로 추락하여 익사하는 자살방법을 선택하였다면, 이건 사고 장소와 같이 수심이 얕은 곳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 장소인 저수지는 망인의 고향에서 불과 4.1km 떨어진 곳이어서 망인이 해당 저수지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대상판결은 고의에 의한 사고가 아닌 우연한 사고일 가능성을 다방면에서 면밀히 검토하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 유사한 사례에서 자살로 판단한 사례(사망보험금 7번 대전지방법원 2021. 8. 18. 선고 2019가단123974 판결)와 비교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