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보험금 16.] 불면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약을 과다 복용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 본 사례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8. 25. 선고 2018가단5231133 보험금 판결)



김계환 변호사(법무법인 감우)




[ 사건개요 ]

망 D(이하 ‘망인’)는 피고와 사이에 2011. 3. 11. 피보험자를 망인, 사망보험금 수익자는 법정상속인으로 하여 망인이 상해로 사망할 경우 1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보험계약을, 원고 B는 피고와 사이에 2011. 8. 19. 피보험자를 망인, 사망보험금 수익자는 법정상속인으로 하여 망인이 상해로 사망할 경우 1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보험계약을 각 체결함(이하 ‘이 사건 각 보험계약’).

 

망인은 2018. 3. 13. 부천시 00아파트, 00호 주거지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압박붕대를 묶어 올가미를 만든 뒤 목을 매어 숨진 상태로 발견됨(이하 ‘이 사건 사고’).

 

원고들은 망인의 부모로서 법정상속인으로 피고에게 상해사망보험금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망인이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였으므로 이는 우연성을 요건으로 하는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거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사고로 면책되었다고 주장.




[ 법원의 판단 ]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 그 자살은 자기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절단하여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행위를 의미하고,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대법원 2006. 3. 10. 선고 2005다49713 판결,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다18929 판결 등 참조).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망인은 극심한 우울증과 약물 과다복용으로 판단능력이 극히 저하된 나머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을 감행하여 사망에 이른 것으로 인정된다.

 

…중략…

 

(3) 망인은 2014. 9.경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이를 복용해 왔고, 2015. 11.경부터 신경정신과에서 수면장애와 우울증 등으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아래 표 기재와 같이 졸민, 라제판, 로라반 등 벤조디아제핀계 안정제를 처방받아 매일 복용하였고, 2016. 2. 24.부터는 항우울제가 추가되어 위 안정제 등과 함께 5종의 약물을 매일 복용하였는데,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중독성이 강하고 부작용이 심한 약물로서 과다복용하는 경우 의식의 혼란, 인지기능의 변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5) 망인은 수면장애, 불안증, 우울증의 상태가 호전되지 못하여 매일 약을 복용하였지만 수면제의 내성이 생겨 약을 늘려도 잠을 잘 자지 못하였고, 수면제와 우을증 약을 함께 복용한 상태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한 행동들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중략…

 

(7) 망인은 이 사건 사고 무렵 3일을 거의 한 숨도 자지 못하여 심신이 극히 피로한 상태에 있었고, 사고 당일 새벽 5시경에 남자친구에게 “우울해”,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어”라는 문자를 보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음을 나타냈다.

 

(8) 망인은 사망 당일 약속한 시간에 수강생들을 만나러 오지 않았고, 빨래 건조대에 압박붕대를 묶은 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목을 매 사망하였는데, 따로 유서를 남기지는 않았다.

 

(9) 이 법원의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감정의는 망인이 수면을 위해 야간에 약물을 과다복용하고, 이후 새벽시간에 약물 과다복용 후 기억상실, 탈억제 등으로 의식의 혼란, 인지기능의 변화 등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그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보장하는 ‘상해로 인한 사망사고’에 해당하고, 망인의 사망이 이 사건 약관상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피보험자의 고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음.




[ 설 명 ]

상해를 직접 원인으로 하여 사망한 경우에 지급되는 상해사망보험금에 있어 ‘상해’는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를 말한다. 이때, ‘외래의 사고’라는 것은 상해 또는 사망의 원인이 피보험자의 신체적 결함 즉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 등에 기인한 것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해 초래된 모든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다12241, 12258 판결 등 참조).

 

‘외래의 사고’라는 상해사고 요건 측면에서 보면, 피보험자가 질병인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한 경우는 외래성이 인정되기 부족하여 상해사망보험금의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볼 것인지가 문제된다. 특히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경우도 외래성이 없음을 이유로 상해사고로 보기 어렵다고 볼 것인지가 문제된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7. 1. 선고 2017가합559409 판결은 “그 자살의 원인은 망인의 질병인 우울증에 기인하였다는 것인바, 이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망인의 사망에 사고의 외래성이 인정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상해사망보험금 관련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바 있다{한편, 고의적인 자살로 인한 사망의 경우는 우연성이 결여되어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로는 사망보험금 13번 사례(창원지방법원 2021. 5. 6. 선고 2020가단11592 판결) 참조}.

 

이에 반해, 대상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단5231133 판결)은 대법원 2013다18929 판결 등에 기초하여,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망인이 스스로 목을 매어 사망한 것은 망인의 신체적 결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므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고, 망인이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였다면 이는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상해사망사고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의 사망이었는지 여부는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성행),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진행 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과 자살 무렵의 자살자의 행태,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기타 자살의 동기, 그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다97772 판결 등 참조).

 

대상사건에서 망인의 경우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불분명하나, 불면증으로 인한 증상이 매우 심각하고 오래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통상 자살사건의 경우 우울증이 주로 문제되어 온 반면, 대상판결 사안의 경우는 불면증과 그 치료약물의 부작용에 더 무게가 있다. 대상판결은 진료기록감정의 소견을 인용하면서, 망인이 복용하던 약물, 특히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약물의 부작용과 그 과다복용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벤조다이아제핀계 약물은 불안상태 및 수면장애를 치료하는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진정수면제로, 금단증상을 유발하는 의존성, 중추신경계 억제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고, 장기사용은 인지기능과 인지장애의 잠재적인 악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한국보건의료연구원,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약물의 처방양상 및 안정성”(2012), 10페이지}. 대상사건의 경우 실제로 망인은 벤조다이아제핀계 약물을 복용하면서 지각, 결근, 인지능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생겼고, 이 사건 사고 무렵에는 3일간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는 점은 망인의 상태가 심각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사고 당시에는 심각한 수준의 불면증으로 수면을 위해 야간에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바람에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살을 결행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의 소견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