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보험금 20.] 경찰 수사결과보고서에 자살이라고 기재되었으나 수면제와 알코올의 상호작용에 의한 우연한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본 사례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3. 25. 선고 2018가합564705 판결)



김계환 변호사(법무법인 감우)




[ 사건개요 ]

E는 2016. 8. 23. 피고 C와 피보험자 E, 사망시 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하는 보험계약을, 2012. 10. 25. 피고 D와 피보험자 E, 사망시 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하는 보험계약을 각 체결함.

 

위 각 보험계약은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상해의 직접결과로써 사망하는 경우 상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고,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로 정하고 있음.

 

E는 2016. 11. 18. 자신의 거주지에서 약물중독(졸피뎀 등)으로 사망하였고, E의 법정상속인인 원고들은 피고들에게 상해사망보험금을 청구함.

 

피고들은 E가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아온 점, 졸피뎀 및 항우울제 약물 복용시 술을 마실 경우 부작용에 대하여 의사나 약사로부터 주의를 받았을 것인 점, 사망 당일 수면제 과다복용 전에 친언니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한 점, 시체검안서에 ‘자살’로 기재된 점 등을 이유로 우연한 사고로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니라 고의로 자살한 것임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함.




[ 법원의 판단 ]

E가 사망 당시 과음한 상태에서 다량의 졸피뎀을 복용하여 졸피뎀, 셀트랄린 및 알코올의 상호작용에 의한 약물중독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바, 그 사망이 ‘우연한 사고’에 의한 것인지, 자살하기 위한 ‘고의 행위’에 의한 것인지 살펴본다.

살피건대, 다음의 사실 및 사정에 비추어 보면, E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잠이 잘 오지 않자 평소보다 많은 수면제를 먹고 자는 과정에서 졸피뎀과 셀트랄린 및 알코올의 상호작용에 의한 ‘우연한 사고’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고,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E가 자살하기 위하여 고의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1) E는 사망 당시 성인 1일 권장량 10mg을 초과하는 대략 4알(40mg) 정도의 졸피뎀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E 부검 결과 혈액에서 검출된 졸피뎀의 함량은 0.5mg/L로서 치사 농도의 1/3 내지 1/4 함량에 불과하다.

 

2) E는 배우자가 2016년 초경에 사망하자 잠을 잘 자지 못하여 수면제 처방을 받은 적이 있고, 술을 먹으면 더 잠을 이루지 못하여 술을 먹은 상태에서 수면제를 먹고 잔 적이 있다. E는 사망 당일에도 과음한 후 잠을 이루지 못하자 평소보다 많은 4알 정도의 수면제를 먹고 잔 것으로 보인다.

 

3) 만일 E가 자살을 결심하였다고 가정할 경우, 현장에서 발견되었고 불과 사망 3일 전에 28일분의 양을 처방받은 셀트랄린을 과다복용하는 것이 합당하나, 부검 결과 E의 혈액에서 셀트랄린은 치료농도 범위 내로 검출되었다.

 

4) 의료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인 E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졸피뎀을 복용할 경우 상승작용으로 인해 사망할 수 있음을 예견하고, 자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술과 졸피템 4알을 복용하였다고 보기는 상식적으로 어렵다. E가 의사, 약사로부터 졸피뎀, 셀트랄린을 과다복용, 오남용하거나 알코올과 함께 섭취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 관하여 충분히 주의를 들었다거나, 졸피뎀 설명서에서 위 관련 내용을 읽었다거나, 그로 인하여 위와 같은 사항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5) E는 과거에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고, 2015년에는 우울증, 정동장애를, 2016년 사망 직전에는 우울증으로 각 치료를 받았으며, 담당 의사에게 죽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E가 자살 시도를 한 것은 일자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과거의 일이고, 2015년 12월경 이후로 양극성 정동장애로 진료를 받은 적이 없으며, 우울증의 경우도 중등도의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 또한 배우자의 사망, 둘째 딸의 이혼 등 주변 상황이 좋지는 않았으나, 최근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기도 하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고 말하는 등 E가 자살을 결정하였을 뚜렷한 동기가 없다. E의 유서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6) E는 사망 당일 언니에게 전화하여 수면제를 먹고 죽겠다는 취지로 말하기는 하였으나, E가 원고 B가 자려는 것을 보고 “에이, 술이나 더 먹고 자자”라고 말하며 술을 더 마셨던 상황을 감안하면, E의 위 말은 자살의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것이라고 봄이 합리적이다.

 

7) E의 변사사건에 관한 수사결과보고서의 직접사인란에 ‘약물중독사’, 간접사인란에 ‘기타우울증(자살)’으로 각 기재되어 있으나, 위 수사결과보고서의 경찰의견란에 ‘타살혐의점 없어 내사종결 의견임’이라고 기재된 점에 비추어 보면, 경찰수사결과는 타살이 아니라는 점 이외에 E가 자살하였는지, 비의도적 사고로 사망하였는지 여부를 증명할 자료라고 볼 수 없다.

 

또한 E의 시체검안서의 직접사인란에 ‘급성약물중독(추정)’, 직접사인의 원인란에 ‘약물(항우울제) 과다복용(추정)’ 의도성 여부란에 ‘자살’이라고 각 기재되어 있으나, 위 시체검안서는 의사의 육안 관찰 및 위 경찰수사결과 등에 근거하여 작성된 것으로서 E가 2016. 11. 18. 3:00경 급성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점 이외에 E가 자살하였는지, 비의도적 사고로 사망하였는지 여부를 증명할 자료라고 볼 수는 없다(위 시체검안서는 E가 수면제가 아닌 항우울제를 과다 복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여 부검결과와 배치된다).




[ 설 명 ]

대상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564705 판결)의 경우와 같이 약물중독사로 볼 수 있는 경우 ‘자살’로 볼 것인지의 판단은 사망이라는 결과를 예측하고 해당 약물을 복용한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사망이라는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행동이라면, 당연히 고의로 자신을 해치는 ‘자살’이나 ‘자해’로 보기 어렵고, 우연한 사고로 볼 수 있다. 이때, 사망이라는 결과를 예측하였다고 보려면, 객관적으로는 약물을 치사량에 이를 정도로 과다 복용하였거나, 복용한 약물의 양이 치사량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라도 다른 약물이나 알코올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할 수 있는 정도에는 해당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관적으로는 피보험자가 약물 과다 복용 혹은 부작용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대상사건의 경우 부검 결과 피보험자가 복용한 약물 중 수면제인 졸피뎀은 과다 복용하기는 하였지만, 치사량에는 현저치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항우울제인 셀트랄린은 치료농도 범위였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때, 약물 자체를 과다 복용하여 사망한 경우로 보기는 어렵다. 음주 상태에서 졸피뎀 등의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경우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험사는 피보험자가 음주 상태에서 졸피뎀 등을 복용할 경우의 위험성에 대하여 의사나 약사로부터 주의를 받거나, 졸피뎀 의약품 설명서 내용을 통해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피보험자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설령 피보험자가 음주 상태에서 졸피뎀 등의 약물을 복용할 경우 부작용 위험성을 의사나 약사로부터 고지받았다고 가정하더라도(대상사건의 경우는 이를 입증할 증거가 현출된바 없는 듯하다), 그것만으로 피보험자가 사망이라는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대상판결 외에도, 사망보험금 8번 사례 대구지방법원 2019가단125246 판결 역시 같은 취지로 판단한바 있다). 어느 정도로 음주를 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의 약을 복용하여야 하는지 일반인으로서는 정확히 알기도 어렵기 때문에, 결국 사망을 의도한 것이라면, 상당한 과음을 하였거나 적어도 다량의 약을 복용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상사건 피보험자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대상사건 피보험자의 경우 셀트랄린은 처방받은 약이 많이 있었음에도 치료에 필요한 정량만 복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자살을 의도한 경우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다. 이에 반해 졸피뎀의 경우 1일 1회 1정(10mg)이 권장량인 반면, 대상사건 피보험자는 이보다 많은 4알을 복용하여 과다 복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면제의 경우 내성이 생기면 권장량보다 더 복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피보험자의 복용량이 치사량에는 현저히 미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피보험자는 사고 이전에도 술을 먹으면 더 잠을 이루지 못하여 술을 마신 상태에서 수면제를 먹고 잔 적이 있었다는 점으로 볼 때, 역시 자살시도를 위한 과다 복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졸피뎀 음독 자살군의 특성을 연구한 국내 연구결과에 따르면, 응급실에 내원한 177명의 졸피뎀 음독 자살시도군 177명의 졸피뎀 음독량은 평균 17.77알이었으며, 의학적 치명도로 구분하였을 경우 ‘경도에서 중등도’는 평균 16.81알, ‘중도’는 24.28알이었다고 한다(맹헌규 외, “일 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졸피뎀 음독 자살시도군의 특성”, 정신신체의학 29권 2호, 146페이지). 위 연구결과에서의 통상적인 졸피뎀 자살시도자의 예에 비추어 볼 때, 대상사건 피보험자의 경우 졸피뎀 자살시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