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인돈받기-9] 채무자가 바지사장을 내새워 거래를 한 경우
바지사장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무법인 감우 변호사 김 계 환


 
 

 

 

 

 

 

 

<만화가 : 조정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신용불량자가 많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서 거래를 하는 사례가 유난히 많다. 아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름까지 빌려줄 정도로 인심이 후한 나라여서일까? 은행대출금을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되더라도 가족이나 친지들의 명의를 빌려 사업자등록을 내고 버젓이 사업을 계속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악덕 채무자들은 다른 사람 명의로 사업을 하다가 외상값을 갚지 않고는 잠적하거나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고, 사업자명의를 빌려준 사람(명의대여자)은 자신은 실제 거래한 사람이 아니므로,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곤 한다.

 

  애시 당초 실제 사장이 신용불량자이거나 다른 사정으로 타인의 명의를 빌려 사업을 한다는 사정을 알면서 거래한 경우라면, 실제 사장을 상대로 청구하여야 하고, 명의대여자에게는 청구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명의대여자를 사장으로 알거나, 실제 사장이 누구인지는 잘 알지 못하고(이는 거래상대방의 내부사정에 불과하므로) 거래하는 경우가 더 많고, 이런 경우에도 위와 똑같이 취급한다면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하다. 그렇다면, 명의자가 아닌 실제 사장이 따로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거래한 채권자들로서는 누구를 상대로 하여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상법 타인에게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여 영업을 할 것을 허락한 자는 자기를 영업주로 오인하여 거래한 제3자에 대하여 그 타인과 연대하여 변제 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상법 제24). 이를 명의대여자의 책임이라고 한다. 따라서 채권자로서는 일단 거래상 발생한 미수금 채권 등에 대하여 명의대여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명의대여자 소유의 재산에 대하여 가압류를 할 수도 있다. 위 만화 사례와 같이 사업자등록명의를 대여한 경우 역시 이에 해당하고, 법원 판결례 중에도 사업자등록명의를 대여해준 사람에게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서울고등법원 2009. 5. 13. 선고 200873870 판결).

 

  다만, 채권자가 명의대여사실을 알았거나 모른 데 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명의대여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데, 이때 채권자가 명의대여사실을 알았거나 모른 데 대한 중대한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면책을 주장하는 명의대여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대법원 2008. 1. 24. 선고 200621330 판결). 따라서 채권자로서는 명의대여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 실제 사장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소송에서는 더 편리하다. 특히 거래 횟수가 적거나 기간이 짧은 경우, 직접 만나지 않고 거래한 경우(온라인 상 거래 등)와 같이 거래상대방으로서는 명의대여자가 실제 사장이 아님을 알 기회가 없거나 적은 경우에는 명의대여자의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더욱 크다. 또한 다른 사람 명의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송실익(, 승소할 경우 강제집행이 가능할 것)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되도록 명의대여자를 피고로 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한편, 소송과정에서 채권자가 명의대여사실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는 입증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 입증가능성이 높은 경우(거래 횟수가 많거나 거래기간이 긴 경우, 거래당사자 사이에 친분이 있는 경우 등)에는 명의대여자에 대한 청구가 기각될 경우에 대비하여 명의대여자뿐 아니라, 실제 사장도 피고로 할 필요가 있다(피고들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는 경우에 따라 다르나, 동업관계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채권자 입장에서는 일단 명의대여자 소유의 재산에 대하여 가압류를 하여야 하고, 거래명세서나 세금계산서 등 증거자료상으로도 거래상대방이 명의대여자로 되어 있을 것이므로, 굳이 이 단계에서는 명의대여자 책임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본안 소송에서는 명의대여자와 실제 사장 모두를 피고로 하여 청구하는 것이 좋다.

 

  다시 위 만화 사례의 경우를 살펴보면, 배재라는 신용불량자이기 때문에 배재라를 상대로 소송을 하여도 실익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나바지는 실제로는 배재라에게 사업자등록명의를 대여한 속칭 바지사장의 경우이지만, 단순히 명의만 대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게에서 일을 하였고, 거래를 하면서 세금계산서를 자신의 명의로 작성받았다. 이런 경우 거래상대방인 한외상으로서는 나바지가 실제 사장이거나 적어도 처남, 매제지간인 나바지와 배재라가 동업을 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고, 실제로도 한외상은 그런 오인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한외상으로서는 배재라뿐 아니라 나바지에 대하여도 육류대금을 지급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 떼인돈 받기 관련 만화와 글을 저작권자의 보호를 받습니다.